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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남은 삼성스포츠단 소속 선수들의 땀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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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스타]김경훈

등록일 2012-08-10

Legends of Samsung sports|김경훈

 

태권도 그리고 시련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 금메달의 주인공 김경훈.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첫 무대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한 영광의 주인공인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가족을 향한 값진 선물이다.

 

김경훈은 10살 때 처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 손에 의해 태권도장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태권도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 또한 하얀 도복이 싫지 않았고 태권도에 서서히 매료되면서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자양중학교 3학년 때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하면 실력을 인정받은 김경훈은 당시 고교 태권도의 명문인 동성고등학교에 입학해 2학년 때부터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으며, 전국체전은 물론 전국규모의 대회를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하지만 김경훈에게 첫 시련이 닥친다. 그를 태권도에 입문하게 했던 아버지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가정형편은 어려워 졌고, 잠시 태권도를 멀리하기도 하였으나, 힘들게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꼭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도복을 다시 입고 검은 띠를 동여맸다.

 

태극기를 들고 뛰고있는 김경훈 선수

 

웰터급 강자로 우뚝

 

확실해진 목표는 빠른 기량향상으로 이어졌다. 탁월한 실력과 좋은 신체조건(197cm)로 인해 많은 대학 팀들로부터 영입제의가 줄을 이었고, 결국 한국체대에 입학,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 가기 시작했다. 김경훈은 입학하자마자 출전하는 대회마다 1위를 휩쓸며 대학무대 웰터급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탄력을 받은 김경훈은 국내대회에 이어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4년 월드게임 1위, 1995년 이집트국제대회 1위, 1996년 아시아선수권 1위, 1997년 월드컵 1위 등 출전하는 국제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아렸다. 하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3위에 그치고 만다. 조금 애매했던 판정이 김경훈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김경훈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닥쳐온 것이다. 억울한 마음에 운동을 그만 둘까하는 고민까지 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1998년 졸업과 함께 삼성에스원에 새 둥지를 튼 김경훈은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묵묵히 훈련을 해 나갔다.

 

불운 딛고 올림픽 스타로

 

하지만 당시 그의 앞에 한국태권도의 최강자이자 팀 선배인 김제경이라는 태산이 버티고 있었다. 결국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는 김제경의 연습파트너로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한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당시 허벅지 부상에 시달렸던 김제경은 좀 처럼 회복을 못하자 스스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다. 다시 치뤄진 선발전에서 김경훈은 팀 동료인 문대성을 이기고 대망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뒤늦게 올림픽대표로 선발된 김경훈의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 경기.
김경훈은 준결승에서 203cm의 파스칼 젠틸(프랑스), 결승에서 99세계선수권 3위의 다니엘 트렌턴(호주)을 누르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한다. 97홍콩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그친 부진을 깨끗이 씻어 냄과 동시에 세계태권도계의 새로운 지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 굵은 땀방울과 함께 김경훈의 눈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묵묵히 자신을 뒷바라지 해줬던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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